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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의 '청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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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버스투어  0 Comments  1,776 Views  20-02-2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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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의 '청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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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허청 올라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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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허청 올라가는 계단





해미읍성 청허정(淸虛亭)

해미읍성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으로 청허(淸虛)라는 뜻은 "참된 생각이 없어 마음이 말고 깨끗하다"라는 뜻이다.

 

청허정은 해미읍성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이곳에 올라서면 천수만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과거 시회를 하거나 문인들이 시를 읊었던 곳이다.

 

해미읍성 시설 중의 하나인 청허정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성현(1439~1504)이 지은 '청허정기'에 그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청허정은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성종 22(1491)에 세운 정자이다.

 

당시 충청도병사절도사영성(해미읍성)에 들렀다간 문인들이 가면서 남긴 시들이 남아있다.

 

조위(1454~1503)가 충청도병마절도사 이손(1439~1502)에게 올린 청허정이란 시가 있고, 절도사와 수령이 복무를 마치고 함께 청허정에 모여 지은 '청허정연회도', 이경전(1567~1644)이 지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

 

1872년 고지도에는 청허정이 고지(古地)로 표기된 것으로 볼 때 고지도 작성 이전에 청허정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에는 청허정 자리에 신사를 만들어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현재 청허정은 과거 관련기록을 근거로 2011년에 개축하였다.







 

해미읍성‥충남 5대 관광지, 서산 제1경



국내 3대 읍성 중 가장 잘 보존
군사적 요충지이면서 천주교 순교지 및 동학혁명 등 600여년 역사를 간직한 곳
동헌, 객사, 내아, 옥사, 해자, 북문, 남문 등 해미읍성의 역사문화가 숨 쉬는 곳
300백년 된 호야나무, 왕벚나무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미스터선샤인, 알쓸신잡3, 바람의 파이터, 삼총사, 근초고왕 등 영화, 드라마의 촬영명소




미읍성은 현재 남아있는 3대 읍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보존 상태가 좋아서 전형적인 읍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읍성 가운데에 전북의 고창읍성과 함께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해미읍성으로 사적 제116호이다.


해미읍성은 천주교 박해지로도 유명하다. 충청도에서도 선진문물이 빨리 전파되는 곳으로 18세기 말에 이르면 천주교인이 늘어남과 함께 순교자도 늘었다.


특히 1866년 천주교를 박해할 때 1,000여 명의 신자들이 잡혀와 고문이나 처형을 당했는데 고문에 쓰였던 300년 된 호야나무(회화나무)에는 아직도 철사가 박혀 있다.


또 형리들은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처형하는 것이 힘들자 해미천에 구덩이를 파고 한꺼번에 생매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서문 밖에서는 천주교인들을 돌다리에 자래기질쳐서 죽였다고 하는데 신도들이 그 돌다리를 세우고 철책을 둘러 순교의 역사를 기리는 한편 함께 순교탑을 세워 놓았다.


이처럼 해미읍성은 천주교인들에게는 순교의 순례지이기도 하다.

 

해미(海美)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기를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 두 현을 조선 태종 7년(1406)에 병합하면서 두 현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태종 14년(1413)에 병마절도사의 병영을 덕산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나서 성종 22년(1491)에 성벽이 완성되었으니, 병영이 효종 2년(1651)에 청주로 옮겨가기까지 서해안 방어의 군사요충지였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12년(1579년)에 병사영의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하기도 하였다.


해미읍의 읍지에는 그 모습을 둘레가 6,630척이며 높이가 13척, 옹성(甕城)이 둘, 우물이 여섯 개 있으며 성 둘레에 탱자나무 울이 둘려 있다고 하였으니 해미읍성을 ‘탱자나무성(枳城)’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성 밖에서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볼 수 없고 안쪽에만 길게 심어져 있다.


남북으로 좀더 긴 타원형 모양을 한 해미읍성은 둘레 길이가 1.8㎞, 넓이는 대략 2만여 평쯤 된다.


5m 높이의 성벽이 2m 남짓한 두께로 둘려 있어 쭉 따라 걸으면 한 시간쯤 걸린다. 성벽에는 담쟁이덩굴이 보기 좋게 뒤덮고 있어 분위기를 한층 살려 준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 이후 관광객이 급증했다고 한다. 특히 2018년 해미읍성축제 ‘조선시대 탱자성을 만나다’에는 중국, 일본뿐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을 포함 23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며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다양한 민속놀이와 옛 선조들의 생활상, 그리고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부실공사 방지법?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서 보존이 아주 잘 된 성곽 중 하나로 해미읍성 성벽에는 청주, 공주 등 각각의 고을명이 새겨져있다. 이는 해미읍성 축성 당시, 각 고을별로 정해진 구간을 맡도록 함으로써 혹시 성벽이 무너질 경우, 그 구간의 고을이 책임을 지도록 했다.


소재지 : 서산시 해미면 동문1길 36-1
문의 : 041-660-2540(해미읍성관리사무소)
성곽 총길이 1800m, 높이 5m, 면적 19만4천, 사적 116호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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